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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름의 권력·세대·운명에 관한 연구

본 연구는 한국인 이름의 권력관계를 확인하고, 여기에서 나타나는 통제, 인권침해, 차별, 역사 왜곡을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한국인 이름에는 창씨개명에 따른 역사·철학적 문제, 국가 권력의 지속적인 통제와 이름 철학의 부재, 전통과 현대의 갈등으로 표출되는 족보와 항렬자 문제, 이름에 대한 과도한 운명론적 해석 등 다양한 문제가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다. 다양한 층위에서 복합적으로 연계된 이름의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 권력·세대·운명이라는 3가지 주제로 접근해 보았다.

우리는 이름에 대하여 국가권력의 단순한 개입이 아닌 억압의 역사를 경험하였다. 창씨개명과 같은 짧은 시기에 억압 기제로 나타난 역사적 기억이 있는 반면에, 신분제 사회와 같이 긴 세월 동안 사회 권력의 통제를 이어온 역사도 있다. 국가 권력이 규정한 이름에 관한 법률과 제도는 이름의 문화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전통 사회 또한 관습과 관례를 통해 개인의 이름을 통제하고 규정한다. 이름에 관한 관습과 제도, 법률들 속에는 젠더 불평등, 계급 불평등, 언어 불평등이 여전히 존재한다. 오늘날의 이름은 오랜 역사를 통해 쟁취한 산물이며, 지금도 사회적으로 평등한 성명권(Name Rights)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많은 학자는 지적하고 있다. 이름은 태어난 아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중요한 권력 행위이다. 이러한 권력 행위들에 대해 아동의 기본권으로 많은 나라가 이름의 권리를 주장하고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성명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성명법(Name Law)이 만들어지지 못한 상황이다. 이 논문은 성명법 제정의 필요성을 권력관계를 통해 밝혀본다.

전통사회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름은 혈연과 지연을 표상하며, 공동체 의식을 생산·공유·전달하고, 권력·계급을 표상하는 상징적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이름은 호명을 위한 수단이며, 주체를 다른 사람과 대비하여 더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정체성 재현의 제반 과정에 속한다. 두 입장은 서로 다른 입장이지만 사회적 인간에게 필요한 양단이기도 하다. 이름에는 가부장 제도, 세대 차이,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이데올로기 부재 등 많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크게 보면 전근대와 근대, 전통과 현대의 세대 갈등이다. 이름은 서로 상이한 세대 간의 갈등 문제를 원만하게 풀어가는 문화지형이 필요한데 상호문화 소통을 토대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름은 운명과 자유의지의 사이에서 만들어지며, 과거, 현재, 미래에 모두 연관된다는 측면에서 시간에 근거해 살펴봐야 그 실체를 규명할 수 있다. 역사적 시간(historic time), 사회적 시간(social time), 개인적 시간(personal time)을 설정해 이름의 변천을 살펴보았다. 인간에게는 근원적으로 유명(有名)의 욕과 무명(無名)의 자유가 함께 공존한다. 이름에는 시대의 욕망과 공동체의 염원, 부모의 바람과 삶의 가치가 포함된다. 나아가 명예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이면서 자아실현의 척도로 여겨왔다. 명예는 공동체의 연대를 생산하는 주요한 정신적 가치로 지금도 작용하고 있다. 반면 무명은 허명과 명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익명성은 언로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름 있음도 나를 만들고, 이름 없음도 나를 만든다. 유명의 입장과 무명의 입장은 서로 상충하나, 인간의 삶에 필요한 역설로 나타난다. 그래서 유명과 무명의 경계 설정과 철학적 정의가 필요하다. 이름은 운명과 자유 사이에 놓여있고,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고 있으며, 권력과 권리 사이에서 대립한다.

주제어 : 이름, 권력, 세대, 운명, 성명법